시 부문 당선작

 

걸리버의 신발 한 짝이 숨어들었다던 암석
지층의 시간을 품은 커다란 발자국들을
나는 아프게 쓸어내렸다

지친 치어 떼가 잠시 쉬어가고
수백 년 전 공룡들이 잠들어있는 곳
채 녹지 않은 간빙기의 얼음이 스며들고
점선으로 도열된 빙기의 이정표 사이에
남겨진 발자국 하나

어린 내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물을 때마다
누구보다 큰 분이셨다고 말하던 어머니
시간의 지층 속, 나를 가로질러간 아버지는
공룡보다도 커다란 발자취를 남겨놓았다
유년의 기억들은
텅 빈 모래밭에 화석으로 잠들어있었다

파도의 염분을 머금은 발자국은
거인국을 찾아 항해를 시작한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한 통일지도 몰라
커다란 발자국 안에 웅크려
아버지의 숨결을 느껴보던 나

파도 속에 새겨진 노 젓는 소리는
걸리버 여행기 속 마지막 페이지로 휘날리고

나는 유적지의 발자국 위로 낮게 웅크려
땅 속 깊이 물든 우화의 목소리를 듣는다
해안선 너머로 헤엄쳐 간 아버지의 외침이
두 팔 벌려 나를 들어 올린다

박주은(살레시오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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