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음악연구소는 평양에 있다. 선생의 교향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를 초연한 곳도 북한국립교향악단이었다. 윤이상 선생은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유럽에서 활동하며 생존해있는 5대 음악가 중 하나로 꼽혔지만 남한에서는 해외친북인사일 뿐이었다.
송두율 교수를 보며 필자는 돌아오지 못한 이 위대한 예술가를 떠올린다. ‘사상범이 아닌 파렴치범’, ‘경계인을 가장한 회색분자’ 등등의 비난들은, 사실 송두율이라는 한 사람의 인간이 감당해 내기 힘든 말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것과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의혹이 단지 뜬소문이길 바랬지만 실제 사실이라는 정황 증거가 나타나면서 여론은 악화되었다. 이른바 괘씸죄이다. “도대체 너는 남이냐? 북이냐?” 우리는 그에게 대답을 강요한다. 사실 남과 북 모두를 택했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죄이다.
조금만 마음을 열어보면 그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송두율 교수가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적화통일을 위해 대남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신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다만 그가 너무 순진하게 북의 호의를 받아들였다고 추측할 뿐이다. 이제 송두율 교수는 북으로부터 ‘비판만 하는 회색주의자’라는 비난을, 남으로부터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말 그대로 경계인의 처지를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물론 송두율 교수가 실정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검찰에서 말하는 전향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국가가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개인의 신념이나 사상까지 재단할 수는 없다. 개인의 사상과 신념은 자신의 것이며 이 사상이 설혹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타인의 재산이나 인격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상의 자유는 보호받아야 한다. 누군가의 사상을 잘못되었다고 판단 하고 전향을 요구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보이고 있는 자세는 이런 민주주의의 상식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정착하지 못함을 느끼게 한다. ‘좀더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전향의 뜻을 확실히 밝혀야 관용을 베풀 수 있다’는 검찰과 이에 열광하는 보수 언론의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딱하기까지 하다.
10여 년 전 윤이상 선생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내에서 그의 귀국을 추진할 때 정부에서 나온 이야기는 ‘확실한 전향’이었고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준법서약서를 요구했다. 말이 준법서약서이지 실은 투항서나 다름없다. 고국 방문이 좌절됐던 해, 리영희 교수가 베를린을 방문해 78세의 윤이상 선생을 만났다. “지성으로 민족의 통일을 생각해왔지만 결국은 몸과 마음이 다 지치고 병들고 말았어.” 선생은 그 만남이 있은 후 2달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준법서약서 때문에 고향 통영 앞 바다에서 낚시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이역만리 타향에 묻혀 있다. 송 교수의 “추방은 상상하기도 싫다. 남은 여생을 조국에서 후학을 위해 바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며 윤이상 선생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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