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우리 형사님 베테랑이시네.” 9월 말 관람객 1300만을 넘기면서 <명량>과 <국제시장>에 이어 역대 한국영화 흥행 3위에 오른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테랑>에서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가 서도철 형사(황정민)에게 던지는 말이다. 영화의 제목이 된 “베테랑”이라는 단어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이기에 기억에 남아 있다. 아주 제대로 건들대서 제대로 미운 조태오의 입에서 나온 세 음절이 내게 호출하는 질문은 이렇다. 서도철은 왜 베테랑인가, 누가 ‘베테랑’인가.

영화의 초반부,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신진그룹 재벌 3세 조태오는 체불된 임금 420만원을 받기 위해 대기업 사옥 앞에서 아들과 함께 1인 시위를 벌이던 트럭기사(정웅인)를 호락호락 달래어 보내는 대신, 불온한 게임을 벌임으로써 일련의 무지막지한 사태를 촉발한다. 2015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이후 ‘갑을관계’와 ‘갑질’이 한국사회의 계급지형과 사회적 감정구조를 대변하게 된 현 시점에서 조태오는 ‘문제적’ 인물인 동시에 전형적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뉴스에서나 볼 뿐 그(들)과 별로 스칠 일 없는 일반인들에게 그저 가져서 불안하고 더 가질 수 없어서 더 불안한 전형적인 재벌 3세일 수 있는 조태오를 문제적 인물로 볼 줄 알고, 이 시각을 고집하는 이가 바로 서도철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고 적반하장 격으로 조태오는 서도철에게 쏘아붙인다. 중국 투자를 앞두고 조태오는 『정글만리』라도 읽은 것일까. 조정래 소설에서 회자되는 중국에 관한 문구가 조태오의 입을 통해 발화될 때, 실은 그것이 표상하는 바는 21세기 신흥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이면만이 아닌, OECD 가입국으로서 명실상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지 오래되었으면서 동시에 ‘헬조선’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이면이자 표면이다.

자문자답이란 지루하기 마련이지만, 이를 무릅쓰고 굳이 한 마디 적어야 하는 것이 질문을 꺼낸 이의 숙제일 수도 있겠다. 서도철이 ‘베테랑’ 형사인 것은 문제 삼아야 할 것을 문제 삼고, 문제 있는 인간을 문제적인물로 보는 시각을 견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사회에 차고 넘치는 문제들을 자꾸 문제가 아닌 것으로, 원래 그러려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길 권유하는 일련의 흐름들 속에서 “문제는 문제”라는 상식을 견지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적당히 받고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 하는 담당수사관에게 서도철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따져 묻는다.

‘그들’이 본의 아니게(?) 자꾸 문제적 인간형이 되어가는 것이 결국 돈 때문이듯이, 모든 이를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권력 앞에 줄 세우는 사회 시스템은 당장 전세 대출금 걱정을 해야 할망정 ‘가오 빠지게’ 살지는 않겠다는 서도철의 상식을 조롱하면서 끈질기게 그에게 ‘문제’를 덮어씌우려 한다. 돈으로 문제를 덮고자 하는 무수한 시도 속에서 돈으로 덮이지 않는 무언가를 견지하고자 하는 상식을 호기로운 것이라 부르는 세상을 문제삼아볼 일이다.


정희원(도시인문학연구소 HK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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