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스처형실로 향하는 기차의 일정을 관리했다. 아이히만은 “관리로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맡은 일을 잘하는 것이었을 뿐, 남을 해치는 것엔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형량을 줄이기 위한 단순한 변명이 아니었다. 수개월간 재판 과정을 지켜본 정신과 의사들은 “아이히만은 우리보다 더 정상이며 심지어 준법정신이 투철한 국민”이라고 말했다.

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며 줄곧 도덕과 법의 경계에 대해 생각했다. 도덕과 비도덕을 나누는 기준은 사적인 영역에 속해있다. 비도덕을 도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은 내적규제뿐이다. 반면 법은 공적인 영역과 닿아있다. 비도덕적인 개인은 처벌을 받지 않지만 불법을 저지른 개인은 공적으로 처벌 받는다. 명쾌하다. 하지만 이를 나누는 기준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람마다 도덕과 법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은 도덕과 법의 경계에도 적용된다.

도서관 사석화, 교내 흡연, 전공 교과 도서 연체, 스터디룸 쓰레기 방치 등은 반복적으로 제기돼왔던 문제들이다.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문제의 옳고 그름을 도덕과 비도덕에만 기대왔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발점은 나 하나라는 사적영역에 머물렀지만 이는 결국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공적영역으로 확대된다. 명확한 규정이나 구체적인 제도를 통한 공적규제를 마련해야할 시점은 아닐까.

조준형 (경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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