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이 한국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디턴의 업적보다 그의 저서 『위대한 탈출』이다. 한경BP가 번역한 이 책이 오역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다. 원문에 없던 부제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가 추가됐고, 서문에서는 『위대한 탈출』을 지난해 큰 돌풍을 일으켰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대립시켜 소개했다.

이에 대해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는 “최근 디턴의 책 『위대한 탈출』의 한국어판이 원문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런 변형과 누락, 새로 들어간 서문은 저자나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가 검토하거나 승인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경BP가 번역한 『위대한 탈출』은 전량회수 조치 됐다.


“불평등은 양날의 검”

앵거스 디턴은 노벨경제학상 수상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평등은 양날의 검과 같다”고 말한다. 불평등에 대한 그의 관점이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디턴은 각 기구의 개별적인 소비 방식에 주목한 학자다. 디턴은 광범위한 개발도상국 가구의 소비 데이터를 통해 빈곤의 정도를 측정하고자 했다. 약 30년 동안의 분석 끝에 내린 결론은 “전 세계는 점점 더 나은 곳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제성장을 통해 인류는 빈곤으로부터 탈출하여 더 많은 복지를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이 디턴이 말하는 ‘위대한 탈출’이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불평등은 경제성장의 유인이기도 하며 경제성장의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대학 경제학부 송헌재 교수는 “불평등 자체보다는 이동성이 중요하다. 소득 이동성이 원활한 건강한 사회라면 불평등은 하위 소득계층의 사람이 상위 소득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재로 작동할 수 있다”며 “디턴의 주장을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디턴은 성장을 통해 1980년 이후 절대다수가 빈곤에서 탈출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경제성장을 통해 불평등이 절대적인 수준에서 평평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디턴이 경계하는 불평등은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의 경제적 성장을 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이다. 탈출로 향하는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것이다. 디턴은 『위대한 탈출』에서 “미국의 경우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소득과 부는 100년 이상 본적이 없다”며 “그만한 불평등은 앞선 탈주자들이 뒤에 남겨진 탈출 경로를 막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극심한 불평등은 초부유층의 사회포획 현상(plutocratic capture)을 유발한다. 초부유층이 사회·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제도나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 역시 저해한다는 것이 디턴의 생각이다.


피케티 vs. 디턴…?

앵거스 디턴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자 한국의 몇몇 언론들은 노벨위원회가 피케티와 반대되는 학자의 손을 들어줬다고 보도했다. 조선비즈는 “노벨위원회가 디턴 교수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부 경제학계에서 피케티류의 평등주의적 접근 방식에 힘이 실리는 것에 대한 경계감을 나타냈다는 평가도 나온다”며 보도했다.

피케티는 방한 시 ‘피케티 vs. 디턴’의 구도에 대한 질문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피케티의 주장이 디턴과 상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디턴이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을 이야기했다면 피케티는 이러한 ‘따라잡기 성장’이 끝난 뒤 저성장에 국면한 선진국에서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선진국은 결국 경제성장률(g)보다 자본수익률(r)이 점차 높아지게 된다. 더 이상 노동 소득은 자본수익률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는 현상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통해 자본주의에는 불평등을 스스로 회복시키는 동학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물론 경제성장률이 충분히 높다면 불평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언제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랄 수는 없다.

피케티 역시 디턴처럼 불평등이 경제성장의 인센티브라고 생각한다. 또한 극심한 불평등이 사회포획 현상을 유발해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경제성장에도 방해가 된다며 디턴과 같은 이유로 경계한다. 그렇기에 디턴은 『위대한 탈출』에서 사회포획 현상을 논할 때 피케티의 연구를 인용한다. 이처럼 디턴과 피케티는 불평등에 대해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다. 송 교수는 “디턴과 피케티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학자는 극심한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피케티는 불평등에 대해 파격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세금을 더욱 누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혹자는 피케티의 주장을 ‘세수를 늘려 복지국가로 전환하자’로 오해한다. 피케티는 같은 세수를 유지하더라도, 누진성을 강화하여 초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세금 제도를 개편하는 것을 대안으로 말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피케티는 매우 누진적인 조세제도를 시행했던 1945년 ~ 1975년에는 불평등도 낮았고, 경제성장도 높았던 반면, 그 이후 누진성이 약화되면서 경제성장은 하락했고, 불평등은 늘어났다는 것을 예로 든다.

디턴은 이러한 누진성 강화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피케티가 말하는 누진적인 정도가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디턴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피케티의 주장에는 동의하진 않는다”며 “피케티의 숫자를 보면 아주 높은 세금을 별로 많지 않은 소득에 부과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피케티의 주장처럼 세금의 누진성을 강화하려면 개개인의 ‘부’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보의 투명성이 필수적이다. 피케티는 투명한 정보를 바탕으로 부의 불평등의 정도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모두가 알고, 토론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불평등’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때다.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1990년대까지 유럽·일본과 같이 비교적 낮은 소득집중도를 보였지만 최근 급속히 영미권과 같은 형태로 소득집중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 불평등에는 사다리가 있을까?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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