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을 먹으려 밥상 앞에 앉아 TV 유선 채널을 틀면 해적왕을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10년 전의 얘기다. 요즘 아이들이 ‘원피스’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선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채널을 틀거나 VOD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그마저도 일본에서 수입한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다.

 
아동용에 편중된 TV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을 향한 편견이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은 어린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최근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떠올려보자.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등의 아동 애니메이션이 가장 먼저 생각나지 청소년이나 성인이 향유할만한 국산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김나미 사무국장은 청소년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가 이를 소비할만한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청소년들이 애니메이션의 시청률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으며 파생 상품을 소비할만한 구매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에 아동 애니메이션을 향유하는 주체는 미취학 아동들이지만 애니메이션 파생 상품을 구입할 경제력을 가진 실제 소비자층은 미취학 아동의 부모들이다. ‘변신자동차 또봇’, ‘터닝메카드’ 등의 토이 애니메이션이 국내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유독 큰 성공을 거두는 이유다.

아동 애니메이션에만 집중하다보니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제작 자체가 힘든 현실 속에서 시장성이 불투명한 성인 애니메이션의 분야로 뛰어들기는 힘든 일이다. 김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아동 애니메이션”이라며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제작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서 다양성의 추구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아동 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인 ‘뽀로로’는 82개국으로 수출될 만큼 세계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창완 한국애니메이션학회장은 “헐리우드 애니메이션 중심인 타 장르에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교육용 아동 애니메이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작품 한 편 제작도 힘들어

열악한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은 그 기형적인 산업구조에서 기인한다. TV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는 방송사와의 방영 계약이 있어야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는 광고가 붙지 않아서 방송사들은 애니메이션을 방영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설령 방송사와 방영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방송사는 제작비의 약 10%만을 부담한다. 거의 모든 제작비용을 제작사가 부담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제작사들은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들어 내기도 쉽지 않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유럽에는 ‘피칭쇼’라는 방송국과 투자자, 제작사가 한데 모여 애니메이션 제작 및 투자를 결정하는 공개설명회가 보편화돼있다. 피칭쇼에 참석한 방송국 관계자는 애니메이션 기획자들의 작품 기획 설명을 들은 후에 여러 개의 작품들 중 원하는 작품을 골라 제작과 TV 방영을 결정한다. 투자자들은 눈앞에서 어떤 작품이 TV 방영에 확정됐고, 또 어떤 작품이 시장성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에 이는 자연히 투자로 이어지게 된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애니메이션이 원활히 제작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힘없는 TV 대체할 수 있어야

TV 매체의 힘이 약해지는 것도 TV 애니메이션 위기의 원인 중 하나다. 김 사무국장은 “요즘 청소년들은 TV 대신 스마트폰으로 애니메이션을 시청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KBS, EBS 등의 공중파 채널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의 평균 시청률은 1~1.5%에 그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한 ‘애니메이션 감상 주 이용 매체 조사’에 따르면 2011년에는 0.8%에 그쳤던 스마트폰 이용률이 2014년에는 10.1%, 지난해에는 20.8%까지 대폭 상승했다. 반면 TV 이용률은 2011년 61.2%에서 지난해 52.0%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TV 방영에만 몰두하지 않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방통위에서 발표한 국내 애니메이션 수출 현황을 보면 외국으로 수출된 애니메이션 중 외국 방송국과의 계약을 통한 직접 수출은 5%에 그쳤지만 33%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전송 항목에 속했다. 이는 온라인 매체를 통한 수출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창완 학회장은 “‘라바’와 같은 짧은 애니메이션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웹 애니메이션을 개발해야한다”고 제언했다.


김수빈 수습기자 vincent080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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