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아주 좋았다. 덥지도 않고 나무 그늘 덕에 오히려 시원했다. 푸르른 숲속에 둘러싸인 옛날 빨간 벽돌 건물에서 우리의 웨딩은 아기자기하게 치러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남편과 함께 준비했기에 긴장감보다는 보람과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11년 연애의 종지부를 찍는 날, 일반 웨딩홀에서의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다 같이 식사하고 와인 한 잔과 대화를 나누는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결혼식은 예쁜 추억이 됐다.”

▲ 윤혜정(34) 씨가 자작마루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지난 5월 우리대학 자작마루에서 결혼식을 올린 윤혜정(34) 씨의 이야기다. 윤 씨는 산만한 분위기의 일반 예식장에서 해치우듯이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아 스스로 기획하는 셀프웨딩을 결심했다. 직접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과정 역시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고 말했다. 윤 씨가 웨딩홀이나 호텔 대신 자작마루를 선택한 이유는 아름다운 주위 환경과 저렴한 대관비, 그리고 시간적 여유때문이라고 했다. 윤 씨는 “파티 같은 분위기가 조성돼 모두가 즐길 수 있었다”며 결혼식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작은 경조사 문화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작은 경조사란 결혼식·돌잔치·회갑잔치·장례식 등 각종 기념행사에 기존 형식과 절차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간소화한 것을 말한다. 작은 경조사 문화 확산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분석할 수 있다.

우선 경제 전체의 구조적 문제다. 한국은 현재 저성장 시대에 놓여있다.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과거 세대의 경우, 미래에 더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과시 소비가 많았지만 지금은 경기 침체로 인해 개별 가구의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줄어든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현 청년 세대의 낮은 소득과 높은 실업률, 고용 불안정은 지나친 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혼식에 투자한 막대한 비용을 후일에 충당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스몰웨딩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비문화에 대한 의식의 변화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지나친 형식주의와 허례허식을 버리고 더욱 내실 있는 경조사를 치르려는 의식이 크게 늘었다. 특히 결혼식과 돌잔치의 경우 주위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써 사회통념에 맞춘 형식을 취하기보다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교수는 “점점 많은 사람이 붕어빵 찍어내듯 예식을 올리지 않고 작더라도 스스로 기획해 본인들만의 의미를 살리고자 한다”며 현재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했다.

매체의 영향도 크다. 지난 2013년 가수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제주도 자택에서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을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다. 그 외에도 원빈·이나영 부부, 성유리·안성현 부부 등 유명인들의 소박한 결혼식들이 기사화돼 긍정적인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개그맨 박수홍 씨는 얼마 전 KBS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과거 10년간 고급 호텔 예식사업을 했으나 이효리의 스몰웨딩 이후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다”며 사업을 접게 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 기자가 작은 장례 서약서를 작성해봤다.

서대문구, 장례식 거품빼기

서대문구는 허례허식과 보여주기식 장례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작년 초 ‘작은 장례문화운동’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원래 무연고 사망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던 작은 장례서비스를 모든 주민이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한 것이다. 작은 장례문화운동 담당자 김시우 주무관은 “일반 상조업체에서 제시하는 장례비용이 대부분의 가정에 큰 부담이 된다”며 “주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1인당 평균 장례비용이 1,328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높은 비용은 상조업체들이 조성한 거품에 불과하다. 장례비용은 크게 장례식장 대관, 음식, 기타 상조서비스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구는 지역 병원과 협약을 맺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장례식장을 대관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수백만원이 넘는 나무관을 종이관으로 대체했고 삼베옷 대신 고인이 평소 즐겨 입던 평상복을 수의로 해 상조서비스 비용을 대폭 낮췄다. 서대문구는 기존의 장례식의 거품을 빼 약 600만원에 장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평균 장례비용의 약 45% 수준이다.

서대문구의 작은 장례문화운동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1200여명의 주민이 작은 장례 서약서를 작성했다. 다른 구의 주민이 상담을 요청하는 문의 전화도 많아졌다. 김 주무관은 상담한 주민 중 한 명이 “죽은 다음에 리무진 버스에 태워봤자 무슨 의미가 있냐”라며 운동의 취지에 크게 공감했다고 전했다. 최근에 작은 장례서비스를 통해 부친상을 치른 송모(45) 씨 역시 “작은 장례 덕에 엄한 돈이 들지 않았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송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지나치게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며 “장례식을 치르고 남은 돈은 살아계시는 어머니를 위해 사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누구든 작은 장례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서대문구는 작은 장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바람직한 장례문화’ 강연을 시행하고 ‘뜻깊은 작은 장례 실천 서약서’를 배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60세 이상 노인인구를 주요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지만 앞으로는 젊은 세대에게도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이런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공공기관의 지원과 경조사 업체의 상품도 늘고 있는 추세다. 구청·시민청 등 많은 공공기관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경조사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과가 지원하는 ‘작은결혼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 작은 결혼식이 가능한 장소와 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장례의 경우 아직까지 많은 지원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시민들의 수요에 따라 국가적인 복지 서비스가 제공될 가능성도 있다. 이 교수는 “작은 경조사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고 앞으로 수요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라며 긍정적인 미래를 점쳤다.


이세희 기자 ttttt7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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