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도권 일대 최대의 규모와 인파를 자랑하는 노량진 수산물시장. 많은 시민들이 노량진이라고 하면 곧바로 싱싱한 회와 매운탕을 떠올릴 정도다. 약 십년전 서울시로부터 수산물시장 건물을 인수한 수협은 기존 건물의 노후화와 시장 현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수협은 상인들과의 협상을 통해 기존 점포의 규모를 유지시켜주겠다는 타협을 봤다. 이로써 3년 전, 신시장이 완공됐다. 하지만 기존 상인들은 신시장의 불편함을 이유로 구시장에 남아있겠다고 선언했고 수협과 상인들의 갈등은 법정 분쟁으로 이어졌다. 해당 소송에서 수협이 승리하며 구시장 영업은 불법이 됐다. 수협은 구시장 철거 통보를 수차례 내렸지만 상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최근 구시장에 단전과 단수를 감행하기까지 했다. 서울시립대신문은 구시장과 신시장으로 갈라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아침 10시 9호선 노량진 역 앞은 공시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걸어다닐 뿐 한산했다. 노량진 수산물시장은 역에서 200m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기존 언론 보도가 말하는 시장 상인들의 사활을 건 투쟁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로변과 수산시장을 구분짓는 외벽을 따라 조금 걸었더니 밑으로 내려가는 임시 지하통로가 나왔다. 통로를 빠져나오니 2차선 도로 하나를 경계로 한편에는 번듯한 신시장이, 다른 쪽에는 재래시장의 정겨운 느낌이 나는 구시장이 있었다.

▲ 어두컴컴한 구시장 속에서 신시장을 바라보면 신시장으로 오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구시장, 한낮에도 어두침침히

구시장으로 향하자, 이곳이 한때 서울 최대 규모의 수산시장이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3년전만 해도 한밤중이 대낮처럼 밝았다는 시장은 이제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며칠 전 수협측이 강행한 단전으로 인해 상인들이 전등 하나 켜지 못하고 촛불에만 의지해 시장을 밝혔다던 언론 보도와는 달리 천장의 전등은 빛을 일부 내뿜고 있었다. 한 상인에게 물어보니 상인 조합에서 가동하기 시작했다던 디젤 발전기 덕분이라고 했다. 시장 바깥에서부터 들려왔던 소음의 정체가 여기 있었다. 하지만 디젤 발전기가 전기톱과 같은 굉음을 내고 있는 것에 비해 전등의 빛은 흐리멍텅했다.

보통 수산시장은 재료 구매처와 식당이 분리돼있는 경우가 많다. 구시장도 한때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식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구시장 2층에 입점해있던 식당들은 무엇 하나 할 것 없이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깨진 유리창에 빨간 스프레이로 ‘철거 예정’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거나 수협측의 철거 공고문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마치 폭격이라도 받은 전쟁터 같았다.

시장을 한바퀴 죽 둘러보니 대략 전체 면적의 1/6도 되지 않는 곳에 점포가 남아있었다. 비어있는 점포에는 물 없는 수조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 상인들의 태도는 다양했다. 그래도 가게를 최대한 밝히고 열심히 물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도, 다 체념한 듯이 촛불 하나를 켜두고 그저 앉아있는 모습도, 근심어린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에게 다가가 근황을 물어보려했지만 기자 신분을 밝히는 순간 모두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은 별로 해줄말이 없다”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십수번의 인터뷰 시도 끝에 한 상인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상인은 왜 구시장으로 이전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신시장의 점포는 해산물을 올려놓는 매대만 같은 크기”라며 “작업을 위한 공간이나 손님들이 지나다니는 통로가 너무 좁아 구시장만하지 못하다”고 했다. 또 “3년전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천장에서 물이 새기도 했다”며 신시장 건물의 설계나 시공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 수협에서 기존 점포와 같은 매대 공간을 내주겠다고 해서 조합장들이 사업계획서에 도장을 찍어줬다”면서 “시공이 완전히 끝나고나서야 건물 내부공간을 확인해볼 수 있었는데 그제서야 수협에 속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내가 노량진 수산시장에 사람이 하나 둘 모여들 때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어. 그땐 여기에 변변한 식당도 하나 없고 황무지였지, 황무지.”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 샀던 선반을 아직도 쓰고 있다는 상인은 수협측에서 자신들이 일구어 낸 시장을 철거하고 싶어 하면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은게 억울한 듯했다. 마지막으로 상인은 “한 사람이라도 여기에 남아있으면 강제로 철거를 하겠느냐. 억울해서라도 못나간다”고 했다.

▲ 구시장(아래)과 신시장(위)의 통행로. 한눈에 보기에도 구시장보다 신시장이 비좁아 보인다.
신시장 상인들 “냉난방은 만족해”

구시장 상인들의 말대로 신시장이 정말 좁은 것이었을까. 또 신시장 상인들은 모두 수협의 압박에 못이겨 억지로 이주한 것이었을까. 현대식 건물인 신시장의 문을 여는 순간 바둑판처럼 밀집된 점포들과 함께 구시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시장을 훑어보니 가운데 통로에서는 통행이 원활해 보였지만 구석진 통로는 사람 세명이 한번에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통로가 좁았다.

그렇다면 상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인터뷰를 요청한 상인마다 “신시장이 구시장보다 비좁다”고 입을 모았다. 매대는 이전과 같은 크기였지만 임시로 짐을 놓을 자리도, 손님들이 구경하거나 점포 안으로 들어올 공간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디가 더 좋냐는 질문에는 모두 신시장이 더 낫다고 답했다. 노량진 수산시장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간부로서 이주를 거부하다가 몇 개월 전 마음을 돌리고 신시장으로 돌아왔다는 한 상인은 “수협측의 계속된 압박으로 이주를 결정하게 됐다. 신시장은 소위 명당과 그렇지 않은 자리의 차이가 심한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건물이 현대식이라 편리하다. 모두 싸움을 끝내고 무사히 신시장으로 이주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괜히 구시장 사람들과 서먹해진 상태”라고 했다. 다른 상인들도 “냉난방이 잘 돼서 좋다”거나 “초기에 비가 새기도 했지만 모두 보수가 이뤄졌다”고 답하는 등 건물 자체에는 만족하는 듯 했다.

▲ 수협측 직원과 경찰들이 비대위의 수도관 진입을 막고 있다.
▲ 터진 상수도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비대위 사람들이 다급하게 뛰어가고 있다.
수도관 수리에 우르르 몰려 온 수협

그러던 중 구시장 상인들의 말을 다시 들어보고자 신시장을 나오려는 찰나 구시장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에게 한 상인이 달려와 “물벼락이 떨어지고 있다”며 시장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바깥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있는데 누가 물을 들이붓고 있는 것처럼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급히 옥상으로 올라가보니 건물 위로 지나가는 상수도관이 터져서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다행히 비대위 측이 빠르게 상수도 밸브를 잠갔다. 그런데 상수도관의 고무 부분을 보니 칼자국으로 보이는 길쭉한 흠집이 나 있었다. 자신이 비대위라는 한 상인은 “단전과 단수를 해도 우리가 버티고 있으니까 수협측에서 시장을 망치기 위한 과격한 방법을 쓰고 있다”며 “불과 한시간 전에 장비를 구해 수도를 복구했는데 다시 이런 일을 벌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외에도 상수도관 곳곳에는 줄톱으로 잘린 듯한 밸브 손잡이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옥상 저편에서 경비원 복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수협 직원이었다. 고치려는 사람들과 부수려는 사람들간의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다. 망가진 고무호스가 나뒹굴고 비대위와 수협 직원이 서로 밀치거나 고함을 지르는 사이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옥상으로 올라왔다. 상인들, 직원들, 다시 상인들, 급기야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까지… 어느새 부실건물 판정을 받았다는 건물 옥상에 100여명의 사람들이 올라왔다.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수협과 비대위 사이에 인벽을 치자 소란은 곧 소강됐다. 한 상인은 “현재 구시장 자리에 소방도로를 설치하지 못하면 수협 측에서 신시장 건물을 나라에 반환해야하는 상황”이라며 “수협이 시장 유지에 훼방을 놓더라도 계속해서 버텨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신시장으로 이주한 상인들과 동고동락하는 사이였는데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니 그저 지금 상황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 호스에 선명한 칼자국들
돌아가는 길 오후 4시, 노량진 역 앞은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아침때보다 북적였다. 하지만 노량진 수산시장과 노량진역은 외벽 하나로 구분된 다른 세계인 듯 역 앞은 너무나 평온했다.


글·사진_ 최강록 수습기자 rkd8hr1234@uos.ac.kr
서지원 기자 sjw_1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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