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지하철 탑승과 하차를 반복하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벌어졌다. 신길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다 중상을 입고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에 반발해 일어난 시위였다. 시위의 주된 내용은 지하철 내 리프트의 철거, 엘리베이터 100% 설치 등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의 이동권, 전국 유일의 공립대학인 우리대학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잘 보장하고 있을까. 기자는 휠체어를 타고 교내를 돌아다니며 우리대학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실태를 조사해 봤다. -편집자주-


기자는 취재를 위해 성수1가1동 주민센터에서 휠체어를 빌려왔다. 휠체어가 필요한 경우 집 주변의 시군구 보건소나 주민센터를 통해서 대여할 수 있다. 휠체어뿐만 아니라 목발과 같은 다른 보장구도 제공하고 있다. 왠지 모를 감동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휠체어, 목발과 같은 보장구는 주민센터뿐만 아니라 국민보험공단의 ‘보장구 대여 서비스’를 통해서도 대여가 가능하다.

▲ 휠체어를 타고 기자가 계단 앞에 있다. 우리 대학 건물에는 자연과학관, 제1공학관 등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들이 존재했다.

열지 못하는 문, 존재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기자는 호기롭게 휠체어를 끌고 신문사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나 처음 다뤄보는 휠체어에 적응되기도 전, 기자는 첫 난관을 마주쳤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건물을 나가기 위해 기자가 지나가야 하는 문은 유리로 된 여닫이 문이었다. 혼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건물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바퀴를 조절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문을 열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기자는 온 정신을 집중해 건물을 나가기 위해 노력했고, 문 앞에서 5분 가량의 고전 끝에 어렵사리 건물을 나설 수 있었다. 대학 내 다른 건물도 마찬가지다. 우리대학에는 자동문을 제공하는 건물이 많지 않았다. 인문학관의 경우 자동문이 설치돼 있지만, 경사로가 설치돼 있지 않아 자동문으로는 내부 출입이 불가능했다. 교내를 돌아다니며 평소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문 열기’조차 스스로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자, 장애인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확 느껴지는 듯 했다.

기자가 처음으로 방문한 건물은 미디어관의 바로 옆에 있는 자연과학관이었다. 자연과학관은 경사로를 통해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자연과학관의 각 층을 돌아보며 불편한 점이 있는지 살펴보고자한 순간, 엘리베이터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허탈함이 밀려왔다. 건물 내부를 꼼꼼히 살펴본 뒤 엘리베이터의 존재를 찾을 수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찾는 시간은 기자에게는 당황스러운 시간이었다.

▲ 기자가 제1공학관의 화장실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1공학관은 장애인 화장실의 시설이 낙후 돼 있었으며, 일반화장실로의 진입도 힘들었다.

제1공학관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기자에게 엘리베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황당한 소식이었다. 휠체어를 타고서 교내를 둘러다니며 ‘숨은’ 불편함을 찾고자 했던 기자에게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문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1공학관의 경우 접근성도 좋지 않았다. 중앙로에서 제1공학관 건물의 경사로를 이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나야하는 시대 텃밭의 길이 잘 정비돼 있지 않아 휠체어의 바퀴가 헛돌았다. 힘든 과정을 거쳐 들어간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경사로를 설치해놨으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때문에 기자는 배신감을 느꼈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로 느껴져야 할 경사로가 형식적인 치레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은 빠르게 해결돼야 할 큰 문제다.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대학 장애학생지원실 관계자와의 인터뷰 도중 우리대학이 장애학생들에게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이뤄지는 수업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시설의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 제1공학관에 들어가기 위해 시대 텃밭을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힘겹게 제1공학관에 들어갔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 내부를 돌아볼 수 없었다.

언덕과 배수로, 예상치 못한 난관

자연과학관을 방문한 뒤 기자는 장애인 휴게실이 있는 법학관으로 향했다. 법학관으로 향하는 길은 오르막길이었다. 수동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던 기자는 큰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오르막의 각도에 의해 휠체어의 앞바퀴는 계속 들렸고, 그때마다 깜짝 놀랐다. 함께 취재를 나온 동료 기자의 도움으로 겨우 오르막을 올랐지만, 그 이후에도 놀란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법학관을 향하는 길은 기자가 이용한 자연과학관을 지나는 길, 정문에서 내려오는 길 그리고 법학관으로 가는 구름다리를 건너는 길 이렇게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 중 오르막 또는 내리막이 있는 길은 두 가지로 모두 휠체어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장애학생을 위한 휴게실이 법학관에 있어 장애인들에겐 필수적으로 지나갈 수 있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휴게 공간이 있으나 제대로 이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장애인 관련 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생각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언제나 쉽게 오르내리던 언덕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기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또 다른 길을 이용해 법학관을 방문해 봤다. 다리를 올라가는 과정은 경사로를 통해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구름다리를 건너던 중 예상치 못한 시점에 갑자기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 심지어 휠체어가 앞으로 쏠리기 까지 했다. 잠시 휠체어에서 내려 원인을 찾아보니 휠체어의 앞바퀴가 배수로에 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까지 설치해 둔 길에서 이런 난관을 만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만약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법학관에 수업이 있다면 언덕이 없는 이 길은 가장 이용하기 좋은 길일 것이다. 그런 길에 작은 배수로는 발목을 잡는 존재였을 것이다. 길을 걸어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숨겨진 장애물들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장애인 휴게실이 있는 법학관은 휠체어로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휠체어 타고 축제 즐기기

기자는 마지막 일정으로 휠체어를 타고 축제를 즐겨 보기로 했다. 전농관부터 이어진 부스를 이용해 보고자 천천히 구경을 시작했다. 그러나 축제를 천천히 구경해 보고자 했던 기자의 바람은 이뤄지기 힘들었다. 전농관부터 이어지는 중앙로는 일부 구간에 내리막길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휠체어는 속도를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내려갔다. 축제를 제대로 즐기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아 보였다.

그렇게 중앙로를 이동하며, 허기진 기자는 음식을 사기 위해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푸드트럭의 앞에 도착하자, 음식 사기도 큰 난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드트럭의 특성상 굉장히 높은 곳에 판매자가 위치해 있었고, 이에 계산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최대한 기대어 카드를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취재를 도와주던 기자가 대신해 카드를 전달해 줬지만, 카드를 건내주는 작은 일 하나에서도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을 위해 낮은 곳에 설치된 계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푸드트럭을 이용하고 있다. 푸드트럭의 계산대는 휠체어를 타고 이용하기에는 높아, 이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끼니를 해결하고 축제 무대를 보기 위해, 중앙 무대로 향했다. 중앙무대 근처로 가니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간판대가 보였다. 휠체어를 탄 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좌석이라는 생각에 기분 좋게 들어가 공연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단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공연자의 모습이 쉽게 보였고, 무엇보다도 사람들 간의 위험한 신체접촉이 없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는 공간이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상대적으로 무대와의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었다. 무대와의 거리가 멀어 공연의 분위기와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그래도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한 장소가 생겼다는 점에서 마음이 따뜻해 졌다.

휠체어를 타고 지낸 하루는 당황의 연속이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시련이 찾아왔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장애인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여러번 들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두발의 시선보다는 바퀴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두 발로 걸을 땐 보이지 않던, 새로운 시각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태영 기자 hanlove0207@naver.com
사진_ 허인영 수습기자 inyoung32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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