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이하 총선)가 실시됐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속에서 치러진 이번 총선은 66.2%라는 최종 투표율을 기록하며 지난 1992년에 치러진 제14대 총선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또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180석의 의석을 차지하며 1987년 개헌 이후 단일 정당으로서는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이외에도 역대 국회의원 선거 중 가장 많은 여성의원과 청년의원을 배출하는 등 이번 총선은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점은 처음으로 만 18세 유권자가 참여한 투표라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27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됨에 따라 선거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됐다. 이에 이번 총선에서는 만 18세를 맞은 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자까지 투표에 참여하게 됐다.

드디어 이뤄낸 만 18세 선거권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 전까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36개국 중 유일하게 만 19세 이상만이 선거권을 가질 수 있었던 국가였다. 지난해 OECD 국가 중 마지막으로 만 18세로 선거 연령을 하향하기까지 그간 수많은 의견이 논의됐다.

만 18세 선거권을 반대하는 이들은 교실의 정치화, 포퓰리즘,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방해가 된다는 등의 이유로 기존의 만 19세에서 선거연령을 하향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에서 만 18세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정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만 18세에게 투표권을 주더라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선거연령 하향 반대 이유로 청소년들의 역량 부족을 꼽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하던 바는 실제와 달랐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에서 실시한 ‘청소년 유권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회의원의 자질은 도덕성과 청렴도 등의 ‘인성’, ‘공약 실천’, ‘소통’, ‘공정함’ 등이었다. 청소년들은 “본인과 반대되는 의견이라도 다양한 생각을 포용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며 후보 선택에 대한 뚜렷한 주관을 드러냈다. 또한 같은 설문조사에서 이번 총선에서 출범하는 국회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 현 정부의 국정수행 평가 등에 응답한 항목을 보면 대다수의 청소년이 우려와 달리 선거와 정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교실의 정치화’와도 거리가 있었다. 공직선거법의 개정으로 선거권을 얻게 된 만 18세 유권자 54만 9천여 명 중 고교재학생은 14만여 명으로 그 외 대부분은 대학생 등 고교 졸업자였다. 만 18세로 선거연령이 하향됨에 따라 선거권을 갖게 된 유다현(도사 20) 씨는 “정당보다는 공약을 우선으로 생각했다”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지역에 이로운 공약을 가진 후보를 뽑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투표하기 전에는 만 18세까지 투표할 수 있는지 몰랐다. 투표를 통해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만 18세는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판단해 투표할 수 있는 나이”라고 덧붙였다.

 
선거 연령 하향으로 청년·교육 공약 늘어나

만 18세 이상 선거권 확대는 단순한 선거 연령 하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만 18세 청소년이 유권자가 됨으로써 정치권은 청소년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됐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는 낮아진 선거 연령에 따라 청년과 청소년층을 겨냥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특임장관직 신설과 국립대 ‘반값 등록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미래통합당은 정시 인원 비율을 50%로 대폭 확대하고 입시 불공정 사례가 없도록 하는 ‘조국방지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투표 가능 연령을 현행 만 18세에서 만 16세로 낮추고 피선거권도 만 18세로 낮춰 청소년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밖에도 정의당은 ‘학생인권법’·‘학력학벌 차별금지법’ 제정, 만 13~19세 모든 여성 청소년에 생리대 무상 지급 등을 실현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주요 정당의 교육공약을 살펴봐도 지난 20대 총선보다 청년과 청소년층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10대 정책 중에는 교육 관련 정책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국립대학의 교육의 질은 높이고 등록금 부담은 낮추겠다’는 정책이 포함됐다. 10대 정책에서 교육 관련 정책이 얼마나 많이 언급됐는지를 비교해보면 더불어민주당은 0개에서 4개, 미래통합당(당시 새누리당)은 4개에서 5개, 정의당은 2개에서 6개로 증가했다.

앞으로 참정권 확대를 위한 노력 계속돼야

우리나라에서 만 18세가 되면 성인으로서 다양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만 18세가 되면 공무원 지원이 가능해지며 일정한 소득이 생기면 납세의 의무도 진다. 또한 부모의 동의를 얻어 결혼을 할 수도 있으며 만 18세부터는 군에 자원입대할 수도 있다. 운전면허 시험 응시도 만 18세가 되는 날부터 가능하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대통령 및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자치단체 의원의 선거권을 가지게 됐다. 또한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 유권자도 선거 운동에 참여하거나 정당법에 따라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하고 당직에 취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청소년의 정치 활동은 많은 부분 제한돼있다. 국민투표, 주민투표 및 주민소환투표에 참여하거나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나이는 여전히 만 19세 이상으로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9일 국회에서 통과된 『청년기본법』은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청년기본법으로 청년의 정책참여가 강화돼 청년정책에 관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청년정책조정위원회가 꾸려졌다. 시·도지사 역시 지역의 청년정책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지방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둬야 한다. 청년의 정책을 위해 청년이 참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청년기본법이 규정하고 있는 청년은 만 19세에서 34세 사이의 시민이다. 여전히 청소년의 정책을 위해 청소년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곳은 없다. 정부에서 공식 운영하는 청소년운영위원회, 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 특별회의 등 청소년 참여 기구가 존재하긴 하지만 참여 절차가 까다롭고 기구 내 청소년의 자율성이 적어 제대로 된 정책제안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모의투표, 선거권 없는 청소년들의 의견 보여줘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들의 의견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한다. 바로 모의투표다. 캐나다에서는 투표권이 없는 18세 미만 학생들에게 모의 투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국가 선거 1주일 전 시행되는 ‘스튜던트 보트(Student Vote)’로 학생들은 후보나 정당의 공약을 살피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U18 청소년 모의투표’로 공식 선거일 9일 전에 학생들이 실제 후보에게 투표한다. 결과는 선거 당일 투표가 종료된 후 발표되며 이 밖에도 ‘청소년 의회’를 통해 청소년들이 실제 공공정책에 참여하고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후보의 정책을 분석하고 토론한 후 모의투표를 실시하는 등 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정치적 판단 능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국YMCA전국연맹 주도로 청소년 모의투표가 진행된 바 있다. 지난 사전선거일과 본 투표일에 진행된 ‘2020 청소년이 직접 뽑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8,214명의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이 지역구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비례정당 투표 결과 더불어 시민당이 35%로 1위를 차지했고 정의당과 미래한국당, 여성의당, 민생당이 각각 13.8%, 11.7%, 10.7%, 5.6%의 표를 얻어 실제 득표율과는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만세를 불렀던 유관순 열사, 광주학생항일운동,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를 비롯해 지난 2016년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던 촛불집회까지 지금껏 우리나라의 많은 역사 속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청소년들은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바쁘다는 이유로, 사회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배제됐다. 이 또한 청소년 본인이 아닌 어른들의 판단이었다. 92년 만에 얻게 된 청소년들의 만 18세 선거권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앞으로 어엿한 사회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선거 및 정치에 대한 교육과 더 넓은 참정권 보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신유정 기자 tlsdbwjd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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