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 응우옌티탄 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응우옌티탄 씨의 손을 들어줬다. 1968년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제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퐁니·퐁녓마을에서 약 70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 5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발생한 피해 사례가 화두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 정부와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전쟁을 두고 어떤 입장을 취해왔을까. 또 우리는 베트남 전쟁과 이번 소송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베트남 정부

한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을 완전히 외면해 온 것은 아니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줘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으며 2004년 노무현 정부는 베트남을 방문해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호찌민 전 국가주석 묘소를 참배했으며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8년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양국 간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베트남 정부는 1992년 한국과 수교할 당시부터 베트남 전쟁에 관해 승전국이기 때문에 사과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미국 정부가 추모공원 건립과 보상을 제안했으나 거부하기도 했다. 여타 침략국인 프랑스나 중국을 대상으로도 먼저 나서 배상을 요구한 적이 없다. 베트남 정부가 사과를 바라지도 받지도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를 접고 미래로 나아가자

베트남 정부의 태도는 과거보다 미래를, 이념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한국외대 베트남어과 송정남 교수는 “베트남은 사회주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념에 묶여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같은 이념을 채택했던 중국조차 60만 대군을 이끌고 베트남을 침략했다”며 “이는 국제정치에서 국익이 이념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베트남 정부가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송 교수는 “전쟁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면 교류가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베트남에서 온 우리대학 교환학생 잔후엔트랑(22) 씨는 “베트남과 한국은 서로 많은 것을 교환한다”며 “현재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국익 증진을 위해 과거를 묻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베트남 정부와 시민들의 보편적 입장이다. 한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전략실 곽성일 실장은 “한국군이 피해준 지역은 베트남 중부 일부에 불과하다”며 “한국군보다는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에 가한 피해가 커 내부적으로 피해를 강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전쟁 당시 타국 외 북베트남에 의한 민간인 피해까지 공론화될까 우려해 과거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퐁니 사건이 불러온 파장, 앞으로 우리는 

베트남 전쟁은 이념이 충돌한 전쟁으로 이에 대한 평가는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다만 민간인 학살 등 전쟁범죄는 전쟁과 별개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해진 군복 없이 활동하던 베트콩과 구분이 어렵다는 이유로 많은 민간인이 남베트남, 미국, 한국 군인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그 규모는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못했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에 의해 사망한 민간인 규모도 추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하 베트콩) 공격에 용이하도록 고엽제를 살포해 민간인에게도 피부병과 기형아 출생이라는 아픔을 남겼다. 
 
지난달 7일 1심 판결이 난 이번 소송은 지난 2020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서 응우옌티탄 씨를 대리해 제기했다. 민변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에서 활동하는 박진석 변호사는 “이번 소송의 목표는 퐁니 사건의 가해자가 한국군이라는 사실과 법적으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지난달 12일 베트남 외교부 도안칵비엣 부대변인은 “전쟁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과 진정으로 협력하기를 원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박 변호사는 “베트남은 정부 차원에서 민간인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돕거나 외교적으로 보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피해자들이 스스로 나서 피해구제를 받고자 노력하는 태도를 마음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잔후엥트랑 씨는 “한국이 올바른 행동을 취했음에 감사한다”며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람들 모두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인식이 변화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편 지난달 17일 국방부 이종섭 장관은 “국방부는 이번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정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이에 베트남 외교부는 “한국 정부가 법원의 판결에 항소한 것을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베트남은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하자는 방침이지만 그것이 진실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민간인 대상 전쟁범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박 변호사는 “대한민국 사회가 물질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사법부가 열어줬다”며 “국가가 국가로서 품격을 보여줘야 한다”고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국가 간 정치·외교보다는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잔후엥트랑 씨는 “프랑스, 중국, 미국 등과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협력해 국가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면서도 “민간인 전쟁피해에 대해서는 가해국 정부의 사과를 모두가 원한다”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최종 승소까지 간다면 이는 과거사를 해결하고 평화와 반전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이번 소송의 의의를 밝혔다. 한편 1심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항소로 앞으로 법적 절차는 계속될 예정이다. 베트남 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대해 최초로 국가에 책임을 묻는 이번 소송이 어떻게 종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베트남의 가파른 경제 성장을 보여주는 호찌민시의 화려한 야경
베트남의 가파른 경제 성장을 보여주는 호찌민시의 화려한 야경

경제부터 교통까지, 베트남 이모저모

베트남 동, 0이 왜 이렇게 많아?

여행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나라 원(KRW)을 베트남 동(VND)으로 환전하는 것이다. 창구 직원으로부터 동을 받으면 원보다 더 큰 단위에 당황할 수 있다. 무언가를 선뜻 구매하기 망설여지기도 한다. 너무 큰 액면가로 인해 물건의 값이 본래 가치보다 비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화폐 단위가 이렇게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호찌민시 곳곳을 누비는 2층 관광버스
호찌민시 곳곳을 누비는 2층 관광버스

답은 동의 국제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수출 규모가 적어 무역 적자가 발생하거나 타국에 비해 무역수지가 낮은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때 외환보유액이 부족해지면서 화폐의 상대가치가 하락한다. 더불어 1981년 노동자의 생산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실적임금제와 물가 인상을 단행한 것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1985년 화폐개혁을 실시했으나 실패한 것 역시 원인 중 하나다. 결국 치솟는 물가에 따라 2003년 발행된 50만동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50만동은 원화로 환산하면 약 2만 5천원에 불과하다.

베트남 정부는 현금 사용을 줄이고 결제를 간편화하기 위해 지난 2016년 비현금거래 정책을 발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금에서 카드, 전자결제의 흐름으로 변화한 우리나라와 달리 현금에서 바로 전자결제가 보편화된 중국과 유사한 양상이다. 베트남에서 온 교환학생 룽민안(21) 씨는 “현재 베트남에서는 주로 모바일페이, QR코드를 통해 결제한다”며 “카드를 받지 않는 식당이 많아 카드는 사용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7일 금융지주회사 로보캐시그룹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의 전자지갑 사용자는 지난 2018년 1230만 명에서 2022년 4130만 명으로 4년 만에 330% 증가했다. 베트남 전체 인구 약 9885만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베트남에서 도보 이동? 쉽지 않을걸요
 

보행로에 질서정연하게 주차돼있는 오토바이들
보행로에 질서정연하게 주차돼있는 오토바이들

호찌민시 떤선녓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공항을 나서 걷다 보면 보행로와 횡단보도의 부재로 발이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찌민시는 보행자 친화적이지 않은 도시로 꼽힌다. 지난 2017년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호찌민시 약 2598개의 거리는 보행로가 없는 상태였다. 호찌민시 도로사용에 관한 규정안에 따르면 보행로에서 보행자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 는 구간은 폭 1.5m 내외인 데다가 곳곳에 오토바이가 주차돼있어 이동하기 좁게 느껴질 수 있다. 

호찌민시뿐 아니라 대부분의 베트남 대도시는 보행로가 좁고 적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도시 설계와 확장 속도 등과 관련이 있다. 호찌민시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설계된 계획도시로 당시 개통된 기본 도로망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이후 도로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건축돼 현재 차도를 확장하고 보행로까지 만들기 위해서는 주변 건물도 대공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보행 여건에 대해 룽민안 씨는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베트남 사람들은 웬만한 거리는 오토바이로 이동한다”며 “도보로 이동하는 건 시간 낭비로 여겨지곤 한다”고 전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도보는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이동 방법인 셈이다.  

오토바이의 나라, 베트남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많은 베트남 도로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많은 베트남 도로

베트남에서는 형형색색의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광경을 매일같이 볼 수 있다. 지난 2015년 기준 오토바이를 소유할 수 있는 만 18세 이상의 베트남 인구는 약 5600만 명, 오토바이는 약 4300만 대로 집계됐다. 그중에서도 호찌민시는 거주인구 대비 오토바이 이용률이 약 93%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2017년 호찌민시 교통부서의 통계에 따르면 호찌민시에는 약 800만 대의 차량이 있는데, 약 740만 대가 오토바이이며 자동차는 60만 대에 불과했다. 

베트남이 오토바이의 천국이 된 이유로는 대중교통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점이 지목된다. 최대도시 호찌민시조차 지하철이 개통되지 않았고 수도 하노이는 지난 2021년에야 베트남 최초로 지하철이 형성돼 대중교통은 사실상 버스가 유일하다. 하지만 호찌민시에 운행되는 시내버스는 약 3천 대로, 1천만 명 이상의 호찌민시 유동인구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다른 지역의 대중교통 인프라는 이보다 미흡하다. 룽민안 씨는 “베트남에서 버스를 타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며 “버스 노선은 아직 도시 전체를 포함하지 못하고, 이동시간이 불규칙적이며 시설도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쌀국수면을 국물에 담궈 고기, 야채와 함께 먹는 분짜
쌀국수면을 국물에 담궈 고기, 야채와 함께 먹는 분짜

두 번째는 오토바이가 베트남에서 합리적인 교통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자동차를 구매하는 비용과 세금은 부담스러울 만큼 높다. 반면 오토바이 1대의 평균 가격은 베트남 1인당 월 평균소득의 3~4배로 비교적 저렴하다. 크기가 작고 속도가 빨라 이동성이 높다는 점도 강점이다. 이미 도로의 대부분을 자동차가 아닌 오토바이가 사용하기 때문에 크기가 큰 자동차는 운전하기에도 까다롭다. 

지난해 베트남 정부는 오토바이로 인한 대기오염, 교통체증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하노이와 호찌민시를 포함한 5개 중앙정부 직할시에 대해 오는 2030년부터 오토바이 운행을 전면 금지 혹은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베트남 국민 대다수가 오토바이를 이동수단으로 활용하고 다른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정책이 오토바이를 줄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시연 기자 jsy4344381@uos.ac.kr 
채효림 객원기자 chrim7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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