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피어나는 도시인문학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서울의 인문학』은 이 같은 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책의 저자들은 우리가 지나쳤던 일상을 약간 비틀어보며 누구나 이러한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보여준다. 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거친 저자들을 만나봤다. 서울이라는 숨가쁜 도시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도시인문학의 관점에서 본 생동감 넘치는 도시는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편집자주-

 
‘이제까지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어 우리가 건설한 것들을 보라. (중략) 도시 생활의 활기나 활력과는 동떨어진 답답함과 획일성의 표본인 중산층 주택단지. 대도시의 속을 들어내버린 고속화도로. 이런 건 도시 재건축이 아니라 도시 약탈이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저자 제인 제이콥스는 1950년대 미국 대도시의 재개발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도시 계획가와 행정 관료들이 도시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만 치중하고 있을 뿐 도시 공간과 시민들이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대해 관심은 없다는 것이다. 제인 제이콥스의 문제의식은 5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2016년의 ‘도시인문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시인문학, 새로운 도시 성찰의 방법

도시인문학은 기존의 도시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방식에 인문학적인 성찰을 더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이전까지의 도시학은 효율성을 위해 기능에 따라 도시를 분할했다. 그 결과 도시는 집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불평등 문제, 공동체의 유지에 관한 문제, 도시의 역사가 훼손되는 문제 등 다양한 문제에 봉착했다. 도시의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차원에서 쏟아졌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미비했다. 도시인문학은 기능 중심의 도시학에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관심을 추가하며 도시를 새롭게 성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대학 도시인문학연구소 조세형 교수는 “인문학은 말 그대로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다루는 것”이라며 “도시인문학은 도시라 하는 특정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이 현상을 이끌어내는 인간의 내면에 대해 탐구하는 통섭적인 학문”이라고 덧붙였다.

도시인문학의 이러한 접근은 기존의 인문학과 사회학이 도시를 다루는 방식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사회학은 사회현상에 집중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소홀했고, 인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며 도출된 문제의식을 사회에 적용하는 데 소홀했다. 도시인문학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통찰을 자신 주변의 사회현상에 대입함으로써 사회학과 인문학 간의 간극을 줄일 수 있다고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공간이 과연 인간적인지에 대한 의문을 자연스럽게 던질 수 있다.

▲ 서울광장을 메운 추모의 노란 종이배 (C) Korea.net
효용성에 제기한 도시인문학의 반기

제2롯데월드, 63빌딩, 영등포 타임스퀘어로 대변되는 현대의 건물들에서는 구하지 못할 것이 없다. 맨 위층에서 맨 아래층까지 휩쓸고 나면 온 몸을 모자람 없이 채울 수 있다. 다른 공간을 오갈 필요 없이 한 건물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성을 극도로 추구한 상징물들이다. 조세형 교수는 “타임스퀘어에 들어가서 어떤 물건을 샀다고 해서 욕망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를 하며 우리는 오히려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될 뿐이다. 이런 랜드마크들은 욕망을 무한하게 반복하는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도시인문학은 주변과의 연결을 무시하고 도시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공간의 개발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 도시는 삶의 흔적이 엉키고 누적돼있는 집합체다. 도시인문학은 도시가 인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옛 동대문운동장 부지를 허물고 들어섰을 뿐 아니라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지적도 도시인문학적 사고의 일환이다. 시민들의 손때가 탄 공간에 마구잡이로 건물을 쌓아올리는 것에 대해 문제를 포착하고 제기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떻게 도시 속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때문에, 도시인문학은 수익이 아닌 시민의 행복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발전방향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서울시의 마을만들기 사업과 결합한 마을인문학이 그 대표적 사례다. 연세대학교 HK사업단과 세교연구소, 성미산 마을단체 ‘사람과 마을’이 함께 시작한 사업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시민·지역 활동가들이 자신의 지역에 대한 인문학 교육을 받는 것, 마을의 청년들이 인문학적 인식을 확장하는 것, 연구자들이 지역의 의제를 사회에 적용하고 지역 단위의 배움의 틀을 만들어 이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획일적으로 자행되는 도시개발과 다르게 지역에 맞춘, 지역 주민이 행복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의 정체성이나 마을 속 자신의 위치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주민들은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을 찾게 됐다. 더불어 사는 마을살이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인문도시의 구축을 향해

‘휴먼서울, 사람이 중심이다’, ‘사람중심의 서울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인간미 넘치는 인문학 중심도시 수원’. 최근 도시인문학이 거둔 성과 때문인지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인문학에 맞춰져 있음이 위와 같은 슬로건을 통해 드러난다. 조세형 교수는 “인문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존의 도시에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창출하는 공간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서울시는 독서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작은 도서관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우리대학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례는 휘경동 ‘작은 도서관 책놀이터’다. 반지하에서 시작되는 이층짜리 건물은 서울시의 매입과 리모델링을 거쳐 마을 주민들이 몰려드는 마을 도서관으로 재탄생했다. 젊은 부모들이 유모차를 끌고 와 아이도 보고, 정보도 교환하고, 책도 읽을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마련된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휘경동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을 이 공간이 아직은 사람의 발길이 다소 닿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도시의 일부를 도서관과 공원에 떼주는 것보다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보다 면밀한 관심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시민들이 마음 편히 발뻗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공간, 인간의 심성을 자극하고 행복지수가 높은 공간. 이같은 인문도시의 기반을 도시인문학이 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대학은 도시인문학이 자리를 잡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도시인문학연구소에서 기존의 문학·역사·철학으로 대변되는 인문학에 사회과학, 건축, 도시계획을 꾸준히 결합하고자 한다.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인문도시의 구축을 위한 고민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박소은 기자 thdms0108@uos.ac.kr

참고

-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유강은 역, 그린비, 2010.
- 서우석, 「도시인문학의 등장: 학문적 담론과 실천」,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 제6권 2호, 2014.
- 이경란, 「마을에서 인문학하기」, 『시대와 철학』 제23권 3호, 2012.
- 유승희, 「인문도시의 가능성」, 『플랫폼』 통권 제18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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