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기사 콘테스트 최우수작

성인 극장 명맥 이어온 청량리 동원극장
거대 자본 유입으로 수입은 변변치 않아


“상영중”
한 눈에 봐도 허름해 보이는 3층의 상가 건물 앞. 농염한 몸짓을 한 반나체의 여인들이 담긴 B4용지 크기의 포스터가 게시판에 붙어있다. 어딘가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아저씨가 힐끔 포스터를 쳐다본다. 지나가는 학생들도, 버스에 앉은 승객들도 한 번씩 야릇한 사진에 눈길을 준다. 시선이 포스터에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곧 각자 가던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초겨울 날씨에 가벼운 옷차림의 포스터 속 아가씨들은 처량해 보인다. 
“할 일 없이 시간 때우러 오는 사람들 몇 명이 손님의 전부야. 그 사람들 덕분에 밥이나 안 굶고 사는 거지” 김 모(76)사장은 손님이 얼마나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는 청량리 동원극장의 주인이다. 동원극장은 전국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성인전용관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김 사장은 지난 94년 동원극장을 인수했다. 당시에는 청량리역 일대에만 성인전용관 5~6개가 성업 중이었다. 그 시기에 롯데백화점 청량리점도 문을 열었다. “원래 춘천에서 직장생활을 했어. 월급쟁이였지. 정년을 코앞에 두고 큰 결심을 했던 거야” 그는 극장을 이어받은 이후 3년까지는 많은 돈을 벌었다. 주말 저녁이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정도였다. 호시절이었다. 하지만 길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터졌고 인터넷이 등장했다. 주변 극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지금은 청량리에 단 두 곳의 성인관만 남아있다.

지금 동원극장에서 십수 년 전의 영광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관객으로 꽉 들어차야 할 대기실에는 PC 15대 정도가 빈 공간을 대신 채우고 있다. 컴퓨터 사용료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김 사장은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는 나름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중년남성 너댓 명이 온라인 바둑이나 고스톱에 열중하고 있었다. ‘중년들의 휴식처’가 따로 없었다. 이 ‘마케팅 전략’덕분일까. 하루 평균 25~30명 정도는 꾸준히 방문한다고 했다. 

70년대 정취를 느끼게 하는 매표소에는 빨간 글씨로 ‘관람료 5,0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10년째 변함없는 가격이다.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떨어져서 안 돼. 그렇다고 내려버리면 한 푼도 남는 게 없어” 김 사장의 말이다. 대화 도중에도 5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매표소 안으로 지폐를 내밀었고 김 사장은 티켓을 내주었다. 영화 세 편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티켓이다.

하지만 청량리 일대에서 10년 동안이나 변하지 않은 건 관람료 5,000원 뿐이다. 2005년 버스 중앙차로제가 시행되며 환승센터가 만들어졌고 커피 전문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정점은 지난 2010년 들어선 청량리 민자역사다. 대규모로 신축된 민자역사 안에는 백화점과 멀티플렉스 영화관, 마트가 입점했다. 덕분에 청량리의 이미지는 크게 개선됐으나 주변 시장 경제는 급속하게 민자역사로 빨려 들어갔다.

김 사장은 거대 자본으로 만들어진 민자역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송사리들이 사이좋게 살던 조그만 연못에 블루종이나 배스 같은 외래종 물고기가 어느날 갑자기 들어온 셈이야. 송사리들이 남아날 수가 없지”

하지만 블루종과 배스의 유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한 전농동 일대는 ‘청량리 재정비 촉진계획(2010년 9월 발표)’에 묶여 대규모 개발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2월부터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던 촉진계획은 지난해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보류됐다. 하지만 최근 개발사업 규모를 축소해 재추진하기로 동대문 구청이 결정한 상태다.

동원극장 맞은편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앞으로 2~3년 안에는 청량리 개발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동안 대로변의 소상인들이 서울시의 통합개발 계획에 꾸준히 반대해왔지만 막대한 자본의 힘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박준규 (경영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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