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들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실까. 생존을 위해 후배들과 경쟁하는 아버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가족들 보기가 미안한 아버지, 외로움으로 인해 하루하루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를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힘겹게 현대 사회와 씨름하고 있는 아버지들. 그들이 흘린 눈물방울, 그 안에 담긴 이야기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보자.

오늘도 야근이다. 회사원 김성호(가명, 53)씨는 어떻게 문자를 보내야 아내가 덜 섭섭해 할까 망설이다 끝내 수화기를 든다. 일을 끝내고 눈이 침침해질 무렵 사무실 안쪽에 마련된 소파에 쪼그려 쪽잠을 청한다. 동이 트면 아침을 컵라면으로 때우고 몇 시간 전에 일하던 책상 앞에 다시 앉아 컴퓨터를 켠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IMF 시절, 그는 회사에서 통보를 받았다. 지방에 있는 지사를 통합할 예정이니 서울로 직장을 옮기든지, 아니면 명예퇴직을 하든지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경상도에 남겨 두고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맡겼다. 그는 “내가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행운이었어. 구조조정 이후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된 입사 동기도 꽤 많아”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의 서울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비싼 서울 땅값 때문에 좋은 원룸을 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겨울철, 일을 끝내고 좁은 원룸으로 돌아와 바닥에 누우면 머리와 발이 벽에 닿아 차가움이 뼛속까지 전해졌다. 회사 생활이 바쁘다보니 와이셔츠 하나 제대로 다려 입지 못하고, 냉장고를 열면 상한 반찬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1년에 2번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의 원룸을 찾는 날이면 대청소를 해야만 했다.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보금자리를 꾸렸다. 그렇지만 그는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변하는 기업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진다고 털어놓았다. 전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올 때마다 밤낮으로 컴퓨터와 씨름해야 한다. 그가 모니터를 앞에 두고 끙끙대는 사이 젊은 부하 직원들은 이미 프로그램에 통달해 있다. 하지만 부하 직원들에게 물어보자니 월말에 실시될 상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성호 씨는 퇴근하고서도 프로그램을 익히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린다. 저녁을 먹으며 아들에게 도움을 청할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아들은 숟가락을 내려놓기 무섭게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는 “그래도 전산 팀에서 근무하는 게 다행이야. 전산 팀의 승진 시험에는 영어가 포함되지 않거든. 영어 공부보다는 컴퓨터를 만지는 게 쉬우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입사 동기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그 친구는 “자네는 영어 어떻게 공부하나? 승진 시험 중 영어 공부가 제일 힘들어. 우리 때 영어 배운 게 뭐 있나. 알파벳이 전부였지, 뭐”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출근길에 오른 그에게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조차 그에게는 무의미하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진동소리에 핸드폰을 꺼낸다. 새로 출시된 보안 프로그램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아, 오늘도 야근이다.

오늘도 전화가 온다. “○○대부입니다. 고객님의 채무 불이행에 따른……. 뚝.” 강규철(가명, 51)씨는 섬유관련 사업을 크게 하다 5년 전 파산을 하고 현재는 빚에 눌려 생활하고 있다. 그는 다시 같은 사업을 이어서 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섬유 산업에 경기가 좋지 않아 예전만큼 수익은 내지 못한다. 그는 “버는 게 예전만큼 못되니 빚을 갚기는커녕 생활비로 쓰기에도 부족해. 지출은 느는데 수입은 주니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도 규철 씨는 계약을 맺고자 여러 공장을 오갔지만 큰 수확은 얻지 못했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동네 편의점에 들러 복권을 한 장 산다. 복권은 규철 씨 하루의 유일한 낙이다. 복권이 당첨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빚. 빚 갚아야지. 그래, 그게 제일 좋겠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얼마 전 규철 씨는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 친구도 사업을 했었어. 그런데 사업이 망하면서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된 거지. 그 친구는 쌓여가는 빚과 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안타깝지. 조금만 버티면 되는데”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한없이 슬퍼할 수만은 없다. 월세, 생활비 그리고 자녀 학비를 마련하러 다시 일터로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규철 씨에게 가장 큰 지출은 자녀 교육비다. 딸은 다행히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부담을 덜었지만 고3인 아들의 학원비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예술을 하겠다는 아들의 꿈을 지원해주려면 매달 50만 원이 넘게 든다. 이렇게 그는 자녀를 위해 투자를 하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바랄 수 없다. “우리 애들도 자기 살 길이 바쁠텐데 어떻게 기대. 내 노후는 내가 챙겨야지”라고 호기롭게 말하지만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사실 노후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 앞으로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길어야 10년인데 벌어야 얼마나 벌겠어. 30대처럼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고, 50대는 이제 태양이 지는 시기인 걸” 이미 규철 씨 주변에는 져 버린 태양이 많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서 잘 나가던 친구들이 명예퇴직을 강요받아 한 순간에 실직자가 된 것이다. 규철 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옛 부귀영화는 이야기하지 않아. 그 때를 떠올리면 현실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지거든”이라고 말했다.

집에 들어가니 자식들은 각자 방문을 닫고 컴퓨터를 하고 있다. 맞벌이를 하느라 지친 아내는 피곤했는지 벌써 잠에 들어있다. “이 시대 가장에게는 권위는 없고 역할만 있어. 경제적으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가족으로부터 외면 받아”라며 조용히 쌓인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따르릉” 알람소리를 들으며 아침 7시에 눈을 뜬다. 아무도 없다. 김윤성(가명, 50)씨는 밥을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에는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샌드위치와 미리 타놓은 미숫가루가 있다. 음식들을 급하게 먹고 회사 갈 준비를 한다.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 후 집에 가면 불이 항상 꺼져있다. 불을 켜면 환한 집이 낯설게 느껴진다. 대충 밥을 먹고 씻은 후 TV를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다 자연스럽게 소파에서 또 잠이 든다. 4년차 기러기 아빠인 윤성 씨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윤성 씨의 가족들은 현재 필리핀에 거주 중이다. 윤성 씨가 아이들과 아내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1번 정도다. 시간이 날 때마다 SNS, 인터넷 전화 아니면 화상통화로 가족들과 연락을 하지만 윤성 씨의 마음은 여전히 공허하다. 그는 “명절이나 가족들 생일, 결혼기념일에는 특히 더 외로워요. 같이 있어야 하는데 같이 있지 못해 미안하고 괴롭죠.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말할 사람이 없어 참 외롭네요”라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윤성 씨는 평균적으로 1주일에 3번 정도의 술자리를 갖는다. 신앙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등산이나 낚시 등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하지만 외로움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이 외에도 기러기 아빠들은 다양한 고충을 겪는다. 경제적 부담 역시 기러기 아빠들이 느끼는 큰 고충이다. 윤성 씨는 정해진 날마다 외국으로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낸다. 그 금액이 만만치 않아 돈을 보내고 나면 남은 돈이 별로 없어 저축도 힘들다.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분명 돈이 지금보다 더 많이 들텐데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또한 아이들이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같이 있지 못하기에 윤성씨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의 영어실력이 느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가도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면 서운해진다. 전화로 대화를 할 때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많이 쓰는 딸을 보며 윤성 씨는 딸이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진다. “보통 기러기 아빠들은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나면 아이들과 어색해진다고 해요. 저는 아이들과 통화를 할 때 어색함이 느껴지진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지 못해 정말 슬퍼요”라고 그는 말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되기를 결심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윤성 씨는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고 있다. 처음에는 교육을 위해 1, 2년 생각했었던 유학이 점점 장기화됐고, 그런 상황에서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이민을 꿈꾸게 됐다고 한다. 윤성 씨는 가족의 행복과 건강은 가정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성 씨는 “가족, 특히 부부가 떨어져 있는 기간은 최소화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서로의 공백이 정말 크게 느껴지더라구요. 또한 성인이 돼서 자녀가 분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린 나이에 자녀와 부모가 떨어져 사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타지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어서 돌아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윤성 씨의 소망이 머지않아 이루어질 수 있길 기대해본다.

 

글·사진_ 박지혜 기자 bc020132@uos.ac.kr
장누리 기자 hellonoory@uos.ac.kr
정수환 기자 iialal9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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