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사회를 달궜던 단어 중 하나는 바로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다. 정치적 극우 성향의 이 온라인 커뮤니티는 등장 직후부터 꾸준히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자 비난의 대상이었다. 이전에도 디시인사이드나 다음 아고라 등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어왔지만 지금껏 일베처럼 커뮤니티가 그 존재와 성향 자체만으로 화제가 된 적은 없었다. 일베를 시작으로 이제 온라인 커뮤니티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대개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시작된다. 한 커뮤니티 안에도 각기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게시판이 마련돼 있고 사용자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따라 특정 게시판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현실 사회에 물음을 던지고 사회 문제는 곧 커뮤니티 안의 문제가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제 단순한 인터넷 상의 친목 단체를 넘어 여론 형성의 장이 됐다.


익명성이라는 면죄부

다양한 분야에 대해 직설적이고 비판적이면서도 때로는 자극적이기까지 한 얘기 모두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익명성의 보장은 자신의 사소한 취향이나 정치적 가치관 그 무엇이든 자유롭고 편하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도시사회학과 심재만 교수는 “익명성은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면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감이 줄어 일방적으로 의견을 펼치기만 해도 되기 때문이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성이 중요하게 작용함을 지적했다.

익명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극단적이고 비논리적인 의견이라도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다. 때때로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패륜적이기까지 한 온라인 커뮤니티 속 발언은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면죄부를 받곤 한다. 그것이 맞는 말이든 틀린 말이든,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마련돼 있다 보니 발언에 대한 책임감이 낮은 것이다. 심 교수는 “현실 세계와 달리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보니 사용자들은 익명이라는 특성에 기대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 이런 점이 사용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성향의 커뮤니티가 꾸준히 유지되고 또 새롭게 생겨날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정치적 영웅이 만들어지는 곳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사용자들의 요구는 빠르게 변하지만 모든 커뮤니티가 그 요구에 부응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커뮤니티가 오랜 시간 그 특성을 유지하며 발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현존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가운데 오랜 역사를 가지고 큰 규모로 성장한 곳은 디시인사이드가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에는 일베, 오늘의유머(이하 오유) 등이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가며 그 뒤를 잇고 있다. 많은 이용자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반으로 급격히 성장한 세 커뮤니티는 모두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한미 FTA 체결 이후의 광우병 파동,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이슈나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이 있을 때마다 각 커뮤니티는 극단적인 의견을 주장하거나 조직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행동은 커뮤니티 전체, 나아가 특정 정치 성향의 의견으로 간주되면서 옹호나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번 6·4 지방선거에서도 각각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는 커뮤니티의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활동이 두드러졌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박원순, 정몽준 두 후보의 대결 구도에서 무상급식에 농약이 들어갔느냐는 쟁점은 큰 화제가 됐다. 이 논쟁에서 진보적 성향의 오유와 보수적 성향의 일베는 각각 박원순과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는 자료를 자발적으로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정 후보 측은 일베의 무상급식 게시물을 기자들에게 보도 참고 자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원 게시글 작성자는 커뮤니티 내에서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영웅이 되기도 했다.

한편 자극적인 표현을 씀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나아가 커뮤니티와 사회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보통 정치적 쟁점 같은 민감한 소재에 대해 극단적인 성향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현실 공간보다 온라인이라는 피상적 공간에서 이목을 끄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심 교수는 “규모가 큰 사이트에서는 자신의 의견이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개인이 커뮤니티에 기여하거나 참여하는 것에서 오는 효용감 또한 떨어진다. 때문에 대중적 관심의 대상인 정치적인 사건과 관련하여 일상에서 보다 자극적인 언행을 행함으로써 개인의 인정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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